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파운드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 풍성한 덩어리와 이를 식빵처럼 잘라놓은 조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화이트보드에는 달팽이, 캐비아에서부터 녹차, 토마토, 올리브까지 바로 먹는다고 해도 입이 호사스러울 것 같은 동·식물성 재료를 빼곡히 써놓은 레시피 10여 개가 방문객의 호기심을 끈다.
마치 빵공장을 연상케 하는 이 모습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천연비누
브랜드인 '천연사랑'의 풍경이다. 파운드 케이크처럼 생긴 덩어리가 바로 천연사랑이 생산하는 천연비누들이다.
천연비누 정보 제공 카페 개설
재료 도소매업자 변신 후
2년 전 비누 제조에 뛰어들어
홍콩 등 해외전시회 참가하고
국내선 판촉물 시장 뚫어
수작업으로 만드는데 매출 3억천연사랑의 대표인 오경희(37) 씨는 자신을 마케팅팀장이라고 소개했다. 사업가라기보다는 아직 천연비누의 효용을 널리 알리고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전문가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12년 전 경영학도로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 제과업체에 사원으로 입사,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제과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여자'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내가 10년을 이 회사에서 일한다고 해도 간부가 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여자 선배들을 보면서 회의감을 가진 그는 2년 만에 다른 일을 해 보기로 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 이후 어학 스펙을 쌓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호주로 여행을 떠난 그는 거기서
소자본 창업의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로마요법.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 온
두통을 아로마로 치료할 수 있다는 데에서 그는 아로마요법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본격적으로 아로마요법을 배우자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는 2004년 호주 시드니의 내이처 케어 칼리지에 입학해 내추럴 테라피 공부를 시작했다. 1년 과정을 마치기 위해 그는 새벽에 학교
청소 아르바이트와 저녁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주말엔 대형마트 캐셔 등을 도맡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듬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
결혼자금에서 200만 원을 헐어(그는 이 돈이 천연사랑의 자본금이라고 설명하면서 웃었다)' 천연비누와 천연
화장품 재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 오프라인 정기모임을 할 정도로 회원이 늘면서 인기를 끌자 비누,
화장품 재료를 구해 달라는 회원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1년 뒤 그는 카페지기에서 천연비누,
천연화장품 재료 도소매업자로 변신을 하게 된다.
"이름이 알려지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천연비누, 천연화장품 제조법을
강의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인 것 같아요."
2010년 그는 재료 도소매업에서 제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미 천연비누를 제조하는 대형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틈새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는 결국 해외에서 가능성을 타진키로 했다. 호주 유학시절 익힌
영어와 중국을 대상으로 무역업을 하는 남편의 중국어를 무기로 홍콩과 중국 쪽 전시회에 참가하며 바이어들과 접촉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K팝의 인기가 그에게 순풍을 달아줬다.
국내는 온라인몰(www.naemall.co.kr)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쇼핑 이외에 부산지역 판촉전문 브랜드인 '
느티나무의 사랑'을 지렛대 삼아 고급 판촉물 시장을 뚫었다.
이렇게 국내외 판매가 활발해지면서 올해 천연사랑은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천연비누 브랜드로는 이례적으로 3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할 정도로 성장했다.
요즘도 목요일마다 회사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천연비누와 천연화장품에 대한 레시피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다음 수순으로 천연화장품 제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천연화장품은 비누와는 달라서 설립요건을 갖춰야 해요. 내년쯤 소규모 공장 겸 연구소를 설립하면 천연화장품도 곧 시중에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